또한 리베라는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고대의 유물을 전시해놓은
수많은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프레-콜럼비안(Pre-Columbian) 문명의 유
물들과 고대 아즈텍의 상형문자 사본들에 큰 감흥을 얻었고 지속적인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96) 당시 프레-콜럼비안 시대의 유물들은 스페인
정복으로 인해 소멸되고 변형된 상태로,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대부
분이 유럽의 소장품들 속에 발견되었다. 고대의 사본들은 유럽에서 19
세기말부터 유행처럼 출간되기 시작하였고, 스페인어로 재해석된 사본
들은 프레-콜럼비안 시대의 정통적인 사본들보다 시각적으로나 개념적
으로 쉬운 접근을 하게 해주었다.
1921년 멕시코로 돌아온 리베라는 이탈리아에서의 감흥의 여파로
고대의 유물을 수집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멕시코 지방 곳곳을 돌며 고대 인디언의 유물들을 수집하고,
전통적인 고미술품을 사들였다.
콜리마 지방의 조그만 찰흙조상, 올메크 지방의 미소짓는 간난아기 가
면, 테스코코 지방의 털없는 개, 나야리트 지방의 다산을 기원하는 작은
입상 등 신비롭고 다양한 멕시코 원주민의 유물들을 무차별로 수집했으
며97) 그 수는 약 6만개에 달하여 한때 파산의 지경에 이르기까지도 했
다. 리베라는 자신이 수집한 엄청난 양의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사설
박물관인 아나우아카이(Anahuacalli)98)를 신축하였으며, 이곳에 거주하
면서 유물들을 연구실험하여 자신의 벽화속에 통합시켜 내었다.
리베라의 작품 초기에 등장하는 프레-콜럼비안 문명의 이미지는 벽
화운동의 일환으로 멕시코의 문예부흥과 혁명을 나타내기 위해 이용되
었다. 그 도상은 고대 아즈텍의 선량하고 자비로운 신들의 모습과, 스페
인 정복 이전의 평화로운 고대 멕시코의 이상화된 사회가 주를 이루며
등장한다. 리베라는 이들의 형상을 단순한 도상적 차원이 아닌 고고학
적 사실성을 바탕으로 재현해 내었다.
리베라의 프레-콜럼비안 시대의 신상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초기작
품은, 1923년 공립학교의 계단 위에 그렸던 아즈텍의 신 호치필리(Xochipilli)100)의 모습(도 53)이다.
신화 속에서 호치필리는 자애롭고 매력적인 신으로, 쾌락과 예술의 수호신이자 꽃의 왕자이다.
리베라의 벽화 속에서 호치필리는 꽃덩굴과 나무로 이루어진 정글 속 중앙에 앉아
인간들을 지배하며 예술과 자연을 관장하고 있다. 리베라는 이러한 호
치필리의 모습을 1200-1521년경으로 추정되는 아즈텍의 호치필리 조각
상(도 54)을 바탕으로 그려내었다. 이 조각상은 아즈텍의 여러 신상 중
가장 우아하고 표현적인 조각상 중의 하나로 꼽힌다. 작은 꽃의 제단위
에 책상다리의 형태로 세우고 앉아, 얼굴에는 마스크를 쓰고 커다란 귀
실패를 달고 있으며, 머리는 약간 뒤로 젖히고 있다. 팔과 다리 위로 꽃
덩굴이 계속해서 장식되고, 무릎 위로 올린 손은 움켜쥔 모양을 하고
있어 이전에 깃발을 쥐고 있었던 흔적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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