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효소

나는말이야 2017. 9. 27. 19:41


무언의 모순들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형상화는 자체로의 현실적인 실천에서
단순히 도피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 실천의 특성을 지니며, 또한 어떤 반응
방식이라고 하는 예술의 개념을 충족시킨다. 그것은 일종의 실천이며, 직접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속죄해야 할 필요는 없다. 또한 예술이 그러한
일을 원한다고 해도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여기서 아도르노는 예술의 실천은 직접적인 전복이나 혁명과는 다른 것으
로 파악한다. 그에게“예술가의 사회적 위치는 타협적인 의식 속에 파고드
는 데에 그 기능을 지닐 것”109)이다. 그리고 예술의 사회적 사상내용은 개
별화된 작품의 내부에 은폐되어 있으며, 예술 특유의 영역에서 나오는 것으
로,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예술이 자율성과 사회성에 양자택일 식으로 기대어가는 경
우를 동시에 비판한다. 그는“예술이 그 자율성을 포기하면 기존 사회의 활
동에 자신을 내맡기게 되며, 엄격하게 자체를 위한 상태에 머문다면 무해한
영역으로서 다른 영역에 못지않게 쉽사리 통합될 것”110) 이라고 이야기한
다. 그러면서 그는 비이데올로기적인 작품의 중요한 평가기준을 작품의 표
현력으로 꼽았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아포리한 상황의 긴장 속에서 표현력
있는 작품은“무언의 제스처로도 웅변적인 것이 된다”111)고 주장하면서 그
예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제시한다.




표현은 작품의 자율적 형태를 위한 사회적 효소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는 그에 대한 공범 증인일 것이다. 그는 명령된 사실주의와 결코 결합될
수 없는 상태에서, 바로 비인간적인 구성을 통해, 그것을 모든 명상적인 오
해의 피안에 위치하는 사회적 저항으로 첨예화시키는 표현을 얻게 된다.
예술작품이 가하는 사회 비판의 영역은 고통스러운 영역이다. 즉 작품의
표현을 통해 역사적으로 확정된 가운데 사회 상황의 비진리가 드러나게 되
는 영역이다. 본래는 분노는 그러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예술이 자율성을 추구함으로써 자유를 얻게 되지만 현실사회는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의 자유와 현실의 부자유는 서로 모순된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예술의 형식규정 안에 예술 밖의 역사와는 다른 그 자체의‘역사성’을 부
여한다. 예술과 사회는 개별적인 것이지만 라이프니츠의 공식처럼“사회적
과정을 창문 없이도 대변한다.”113) 즉‘사회의 비진리’가 예술작품 안에
서는 변형된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예술 작품은 아
무리 매개되고 부정적인 형태로라도 변화된 어떤 인류의 형상이며, 그러한
변화로부터 유리되어 자체 내에서 만족할 수는 없다. 예술은 실천으로부터
등을 돌림으로써 실천적 본질의 고루한 허위를 탄핵하기 때문에 실천 이상
의 의미를 지닌다.”114) 그는 직접적인 실천에는 폭력이 내재되어있음을 지
적하면서 예술을 비폭력적이며 하나의 암호문으로서 사회에 가하는 경고로
보았다. 그러므로 불가능한 조합으로 보이는 예술의 자율성과 사회성에 대
한 아도르노의 사유는 개념적 사유의 한계를 넘어 개념을 파악하고자 함이
다. 그것은 생생한 인간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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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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