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말이야

북한이탈주민

안소민 2017. 8. 13. 16:54



1999년부터 2009년까지 태국 방콕에서 탈북자 전담사역자로 사역을 해
온 본인도 북한 ‘탈북자’에 대한 어감문제로 ‘갈릴리 형제, 자매’로 불러왔
다. 그러다 2005년 1월 9일 대한민국통일부는 사회 각 계층의 의견을 종합
하여 한국거주 탈북자를 순화 용어인 ‘새터민’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이
말은 ‘새로운 터전에 정착한 주민’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낱말의 의미가 ‘탈북자’는 북한을 이탈한 주민을 포괄하는 용어인데 견주
어 ‘새터민’이라는 뜻이 아직 남한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해외 제3국에
흩어져 있는 탈북자를 통합적으로 아우르지 못하기 때문에 용어 사용의
정의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에 2008년 11월 21일에 통일부는 가급적이면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안쓴다고 발표했다.46)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에서 북한 출신 이주민을 칭하는 공식적인 용어에 필요성을 느껴 ‘북한이
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47)’에 명시된 ‘북한이탈주민’으로
부르게 되었다. "북한이탈주민"이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이북지역(이하 "
북한"이라 한다)에 주소, 배우자, 직계가족,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을 벗어나서 외국에서 체류를 위한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사람을 말한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용어의 변천사는 귀순자(귀순용사)-탈북자-새터민
-북한이탈주민의 순으로 변화되어 왔지만, 여전히 남한사회 안에서는 여러
가지 표현으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조사자는 본문에서 북한이탈주민과
북한이탈청소년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성별, 연령별 남한사회 입국현황
1962년 4월 북한 땅을 벗어나서 남쪽으로 온 ‘북한 사람’에 대한 우리
정부차원의 지원체제가 ‘국가유공자 및 월남귀순자 특별원호법’ 재정과 함
께 시작됐다. 이후 1979년 1월부터 시행된 ‘월남귀한용사 특별보상법’은

군사 중요 기밀 정보를 가져오지 않은 북쪽에서 온 일반주민에 대해서도 ‘귀순용사’로 인정하여,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필요한 보상과 지원 그리고 원
호를 하도록 행정 체계를 정비했다.



이후 1987년 2월 김만철씨의 가족 11명이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왔
다."며 시작된 북한탈북자의 행열은 1994년 김일성사망이후 늘기 시작하여
2013년 12월을 기준으로 하여 남한사회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자중 남자
는 7,949명이고, 여자는 18,175명으로 남자의 두 배가 넘는 수로 집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