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텍 세계>
리베라의 벽화 속 호치필리는 이 조각상의 모습과 제단이 아닌 바위 위에 앉은 모
습을 제외하고는 거의 흡사하다. 리베라는 멕시코의 민중들을 계몽하기
위해, 그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아즈텍의 신상을 원형과 충실하게 사실
적인 모습으로 드러낸 것이다.
리베라의 초기작에서 고대 멕시코의 이상화된 사회의 모습은 대통령
궁 계단에 장식된 <아즈텍 세계>(1929, 도 55)에서 단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아즈텍의 태양신 케찰코아틀(Quetzalcoatl)101)이
등장한다. 케찰코아틀은 신화속에서 인간들에게 교의와 문명을 가르치는 선한 신으로,
초록색 깃털이 달린 뱀의 몸에 창백한 얼굴을 특징으로 나타난다.
그는 농경의 재배와 직물제조를 시작했고, 시간계산과 천
체운행을 연구하며 인디언들에게 종교적 교의를 가르쳤다.
리베라의 벽화속 케찰코아틀은 피라미드 앞에 앉아, 흰 예복을 입은 인디언들의 숭
배를 받고 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구부러진 지휘봉을 왼손에 쥐고
있으며, 초록색 깃털로 만들어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에
는 케찰코아틀의 화신(化身)인 에카틀(Ehecatl)이 뱀을 타고 하늘을 나
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신화속의 케찰코아틀이 에카틀(Ehecatl)로 변신
하여 뱀으로 만든 땟목을 타고 동쪽나라로 가는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벽화 속에서 케찰코아틀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대의 생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옥수수를 재배하고 베를 짜며 역법을 연구하고 전쟁을 치
루며 상납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리베라는 이러한 프레-콜럼비안의 문
명의 이미지로 스페인의 정복을 받기 이전 고대 아즈텍 사회의 노여움
이나 절망이 없는 이상화된 사회를 묘사하고자 하였다.
자비로운 신의 모습과 이상화된 사회를 드러내던 리베라의 프레-콜
럼비안 문명의 초기의 이미지는, 1930년 그 활동무대가 미국으로 옮기
면서 신세계를 창조하는 혁명적 노동자들과 산업기술의 세계로 초점이
변하게 되었다. 리베라에게 현대의 기계 형태는 고대의 조각처럼 미학
적인 것으로 보였고, 산업사회의 기술자들은 고대 라틴 아메리카의 화
가들처럼 보였다. 리베라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기술자들은 당신의 위대한 화가들이다. 이 기계들은 내가 본
것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 . . 피라미드와 로마의 길과 수
로, 성당과 궁전과 같은 인간의 훌륭한 옛 구조물 중에서도 이것과 같은 것은 없었다.
기계는 내일의 양식으로 이슈가 될 것이다.”
리베라에게 기계는 최상의 구현물로 생각되었고, 최상의 힘이자 본
질로 여기던 고대의 신상을 기계의 형태에 결합시켜내면서 기계에 신적
인 존엄성과 위엄을 부여했다.104) 또한 자신이 수집한 수많은 유물들을
실험하여 여러 가지의 형태와 양식을 유추해내었고, 벽화속에 지속적으로 통합시켰다.